Home 생활|건강 아들아, 아마도 마운트 위트니 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아들아, 아마도 마운트 위트니 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인디펜던스 연휴를 끼고 맘모스에서 튜알로미 메도우까지 눈길에서 백팩을 메고 5일 동안 걸었던 백팩킹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전화로 한 말이었다. 14년 전에 나와 함께 211 마일의 죤 뮤어 트레일(JMT)을 함께했던 아들이다. 죤 뮤어 트레일의 한 부분의 구간을 다시 다녀와서 잘 마쳤다고 언제나 응원하던 그에게 보고를 하는 전화 내용이었다.
“엄마, 지금은 힘들어서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서둘러 결정하지 말고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그래, 맞아 아들아. 엄만 무사히 5박6일의 산행을 마치고 14,500 피트의 마운트 위트니의 정상에 발을 딛고 돌아왔지. 14년 전에는 삼면이 울타리로 막히고 하늘이 보이던 노천 화장실이 있었는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군. 정상에 도달하여 방명록에 싸인을 할 때 트레일을 유지 관리한 분들의 수고에 감사함을 적었다. 만 피트가 넘으면서 바위가 부서져 쌓여진 사이에 이루어놓은 길들… 정말 어떻게 그 높고 험한 돌길들을 보수 유지했을까?
처음에 마운트 위트니에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퍼밋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늘에 별따기로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운트 위트니에 직접 오르는 퍼밋이나 죤 뮤어 트레일 전 구간의 퍼밋은 힘들지만 죤뮤어 트레일 부분의 구간을 하면서 마운티 위트니에 오르면 퍼밋을 비교적 쉽게 얻는다는 팁을 갖았다. 그래서 오니온 밸리(Onion Valley)에서 시작하여 위트니 포탈(Whitney Portal)로 내려오는 계획을 결정하고 퍼밋을 준비했다. 인요 내셔날 훠리스트(Inyo National Forest) 웹싸이트로 들어가서 퍼밋을 주기 시작하는 날과 시간을 조사하여 내가 원하는 날자와 기간의 퍼밋을 성공적으로 갖았다. 해당 날짜로부터 5개월 전 밤 12시 지나면서 컴퓨터로 들어가서 신청을 하였다. 나의 퍼밋은 노동절(Labor Day)을 끼고 6일을 받았다.
LA에서 운전하여 론 파인(Lone Pine) 에 있는 Eastern Sierra Visitor Center 에서 10 am 이 전에 퍼밋을 픽업해야 한다. 차 한 대를 위트니 포탈의 주차 공간에 떨구어 놓고 다른 차로 30분 북쪽으로 운전하여 인디펜던스(Independence)까지 간다.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가 오니온 밸리의 트레일 시작점에 도착한다. 이곳은 벌써 9,600 피트이다. 오니온 밸리의 트레일 헤드에서부터 위트니 포탈까지가 43 마일이다. 그 중의 제일 높은 지역인 트레일 크레스트(Trail Crest, 13,484 ft)에서부터 마운트 위트니까지 올라가는 길이 또 다른 왕복 3.8 마일이다. 그러므로 총 거리는 약 47마일이라고 하겠다. 위트니 포탈에서 대기시켜 놓은 차를 모두 함께 타고 오니온 밸리의 주차장에 있는 차를 찾으면 함께했던 여정이 끝난다. 이처럼 차 두 대를 가지고 서로 다른 시작점과 끝나는 점의 교통편을 해결하는 방법을 카셔틀(Car Shuttle)이라 말한다. 이리하여 3박4일의 산행 기간과 오는 날과 가는 날을 따로 더하여 5박6일의 죤 뮤어 트레일 백팩킹이 되었다.

혼자 뒤쳐서
무거운 백팩을 지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오르막 돌짝 길을 올라갈 때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신
예수님이 생각나더라구요

나는 내 즐거움을 위해 올라가는데
그 분은 나를 위해 올라 가셨구나

위트니 정상에 오른 그날이
노동절 전날 일요일 아침 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의 퍼밋은 5사람이었지만 우리는 4명이 모였다. 죤 뮤어 트레일에 관심 있는 나의 오랜 산 친구 홍대장과 그가 데려온 씨에라 클럽에서 잘 걷는다는 여자 분과 그의 남자친구, 이렇게 우리 팀이었다. 그 여자 분은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작년에 종주했다. 6개월 동안의 끊임없는 하이킹을 완성하여 애틀란타에서 시작하여 메인주의 캐타딘 산에 도착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념 스티커를 그녀의 백팩에 붙이고 왔다. 갸날프고 쓰러질 것 같은 몸매와 고운 얼굴 모습에서 상상할 수 없는 한국인의 불굴의 의지를 본다. 그녀와 함께 온 남자 친구는 백팩킹이 처음이라고 새 백팩을 메고 왔다. 첫 날은 백팩이 몸에 붙지 않고 불편하여 쩔쩔 매었다. 그러나 그도 물론 마운트 위트니 정상에 섰다. 만 피트를 넘나드는 하루 10마일의 산행을 초보자도 거뜬히 해내드라… 이게 한국인이다!
늦은 오후에 또 다른 오름길을 올라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럴 때에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네가 원해서 산에 왔잖아. 산은 평지가 아니야. 올라가면 내려가는 거 너무 당연한 거야.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가게 되면 발걸음은 편했지만 또 다시 올라가야 함을 알기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위트니 정상을 한 날, 겨우 트레일 캠프까지 내려와 텐트를 쳤다. 고소와 피곤함은 식욕을 앗아가 저녁으로 국물만 조금 들이켰을 뿐 곧 잠자리에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해가 솟아올라 왔다. 트레일 크레스트에서 마운트 위트니까지의 높은 산자락들이 캠프 그라운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파아란 하늘에 치솟아 오르는 태양은 세상을 노랗게 물들였다. 뒷산의 병풍들이 노랗게 물들며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병풍의 오른 쪽 맨 끝이 마운트 위트니였다.
멋있고 장엄했다.
나도 그 속에 있었지…

글 : 김장숙 (시네마 덴탈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