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대심문관 (글: 이준우 밸리커뮤니티교회 담임목사 )

대심문관 (글: 이준우 밸리커뮤니티교회 담임목사 )

<대심문관> 이야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소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16세기 스페인의 세빌리야로 갑니다. 당시 스페인은 무서운 종교 재판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추기경이 대심문관이 되어 유대인을 포함한 무수한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죽였는데, <대심문관> 이야기는 이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종교재판 끝에 화형에 처해진 어느 여름밤이 지났습니다. 처참했던 밤이 지난 다음 날 그 도시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금방 알아보고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대심문관이었던 추기경은 예수님을 체포하라고 명령했고, 체포된 예수님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날 밤 대심문관인 추기경은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을 찾아와서 심문합니다. “당신은 어째서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요?” 대심문관이 던진 첫마디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당신은 인간을 너무 존귀한 존재로 과대평가하고 있소. 인간이란 유치한 어린 아이 같아서 빵과 권위, 기적으로 영도되기를 바라고 있소. 인간들에게 빵을 주었다면 당신은 쉽게 성공했을 것이오.
인간은 빵만 쥐어 주면 누구에게나 복종하는데 무슨 자유를 준다고, 자유가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이오? 인간에게 자유를 주어도 결국 그들은 자신이 받은 자유를 발아래 내동댕이치고, 빵을 달라고 애걸복걸하며 다시 노예가 될 것인데 말이오.” 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사람들은 빵만 주면 누구에게나 복종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자유를 주어도 그것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그 자유로 또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 빵을 달라며 스스로 노예가 되는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은 노예성이 있는 구제 불능한 인간이라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빵보다 자유를 더 사랑하고 갈망합니다. 코로나로 일상의 자유가 제한되자 사람들은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닙니다. 제한된 일상으로 힘들어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힘들어 합니다. 이전에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자유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당연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잃어버리기 전에 자유를 지키고 잘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자유를 방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는 언제나 질서 속에서 존재합니다. 자유의 열매는 평화입니다. 자유를 통해서 무질서와 혼돈이 만들어 진다면 그것은 참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합니다. 자유롭게 운전하려면 교통법규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려면 경기 규칙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운동장을 마음껏 자신의 실력을 펼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자신이 대심문관인양 자의적인 해석을 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나 정의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따라 자신의 배를 불릴 빵을 따라가는 존재들입니다. 자신만 만족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것이 침해당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이루기 위해 집단행동을 합니다. 마스크를 쓰라는 보건 국장을 위협하여 물러나게 합니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사람 틈에서 약탈을 하며 자신의 배를 불립니다. 선한 것을 악하게 이용합니다.
자신의 주장만 펼치며 함부로 행동합니다. 이들에게는 법도 윤리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웃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만 존재합니다. 자신의 자유만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는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자유는 진리를 아는데서 시작됩니다. 진리 안에 있을 때에 비로써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참 자유는 위기의 상황에서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