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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용서하기 -이준우 밸리커뮤니티교회 담임목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인생에도 매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매듭은 용서입니다. 용서하지 않고 내년으로 넘어가면 용서받아야 할 대상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괴롭습니다.
상대를 용서하지 않고 그 분노를 계속 가슴에 두고 계속 괴로워할 것인가 아니면 용서하면서 자신을 자유롭게 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한나 무어는 “용서는 마음의 경제학” 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용서는 분노의 비용을 절감시켜 영혼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는다.”고 했습니다.
플로리다병원과 스탠퍼드 의과대학에서는 용서와 분노가 건강에 미치는 결과를 8주의 용서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했는데 용서를 실천했을 때 사람들의 건강과 삶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아렌트는 “용서란 모든 새로운 세대에 걸쳐 ‘죄’ 값을 치러야 하는 과거의 행위를 구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용서를 통해 과거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누군가는 과거라는 사슬에 묶여 영원한 희생자로 머물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용서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용서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딕 티비츠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너무 빠른 용서는 도피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지만 여전히 바르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인해 지속적으로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단지 행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유익이 없는 용서인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열등감이 아닌 동등함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셋째, 용서를 복수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상대로 하여금 비참함을 경험케 하는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넷째, 감정의 문을 닫아 버리는 용서는 미워하는 마음뿐 아니라 사랑의 감정까지 닫아 버리게 되기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용서라는 이름으로 희생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고 하찮게 여기는 용서는 무가치합니다. 오히려 상대가 자신을 함부로 취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비굴한 것이 아니라 단호하고 관대한 행동입니다. 상대가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용서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여섯째, 사회적 압박으로 용서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용서는 철저히 본인 혼자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강요될 수 없습니다.

일곱째, 남을 대신해서 하는 용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에만 용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눅23:34) 예수님은 죄 값을 치르고 죽어야만 하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자신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용서는 필수 사항입니다.
힘들지만 신앙인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용서하심 같이 용서하며 살라고 하십니다(엡4:32). 용서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용서하면 그로 인한 많은 보상이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축복을 함께 누리기 원합니다.